산티아고 길 프랑스 길 - 죽음의 첫째 날, 숙소 도착까지 30km를 걷다.
피레네는 만만하지 않았다. 특히나 평소 운동이라곤 전혀 않던 나같은 저질 체력에겐 더욱 더...
6시쯤 헉헉 거리며 욱신거리기 시작하는 무릎과 고관절을 부여잡고 산 속에 나 혼자 남는 느낌이란.
내 뒤로는 더 이상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다.
내가 오늘 피레네를 넘는 마지막 사람인 것 같았다.
처음엔 하나씩 둘씩 나를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이상하게 마음 초조했지만 꼴찌로 간다는 것은 나름의 마음 편함이 있었다. 까미노는 경쟁이 아니니까.
하지만, 내 바로 앞을 지나가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한참을 쉬다가 결국은 그 분들을 다시 만났을 때는 피레네를 넘어 숙소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나를 다시 만나자 나보다도 더욱 좋아하시며, 브라보를 외쳐 주셨다.
이탈리아에서 오신 분들이라고 하는데, 나는 정신이 없어서 어느새 내가 프랑스가 아닌 스페인에 와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처음 와 본 스페인이 느낌은, 프랑스와 그닥 다르지 않다라는 느낌.
이탈리아 어르신들의 격려를 받으며,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 멀리서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시아 여자 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차분하고 선한 인상의 이 친구가 첫 눈에 아주 편하게 느껴져 거리낌없이 말을 걸었다.
그 친구는 10유로짜리의 공립 알베르게에서 묵고있다며, 나에게 친절하게 위치를 알려주었다.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 친구는 나보다 일찍 도착해 저녁을 먹으러 갈 시간이었다.
아쉬웠지만 우린 헤어지고 나는 숙소에 들어가 여권과 순례자 여권을 내밀어 스탬프를 받고 절차를 마쳤다.
아침 식사는 과일과 햄,치즈가 더해진 것과 기본적으로 빵만 나오는 것으로 선택해 티켓을 구입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는 순례자 메뉴로 코스 였는데, 수프나 파스타를 고르고, 메인 디쉬는 치킨과 생선, 디져트는 아이스크림이나 요거트로 택할 수 있다.
늦게 도착해서 이미 10유로짜리 2층 침대 방은 다 차있었다. 조금 더 비용을 지불하고, 1층 침대에서 잠을 잤는데, 7월의 스페인은 생각보다 쌀쌀했다. 저녁과 아침에는 숙소에 따로 담요가 없었기 때문에 다들 떨면서 잠이 들었다.
나도 얇은 침낭을 덮고, 가져온 옷 가지들을 온통 다 덮고 잤다.
숙소는 깨끗했고, 나름 괜찮은 편이었다.
세탁 서비스가 놀라웠는데, 3유로란 가격은 싼 편은 아니었지만 건조해서 차곡차곡 개어주기까지 한다.
순례길 내내 이런 세탁 서비스를 받은 곳은 없었기에 기억에 남는다.
한국 책들도 있던 작은 도서관
직접 요리를 해 이 곳에서 먹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알베르게에서 등산화는 따로 벗어놓고 보관해야한다.
간단한 용품들을 살 수도 있다.
이 곳에서 수속을 밟고 방을 잡을 수 있다.
치킨 없던 치킨 수프.
첫 날이라 몰랐지만, 사먹는 메뉴보다 직접 해 먹는게 훨씬 싸고, 건강에도 좋을 거란걸 걸으면서 알게 됐다.
온 몸이 욱신거려, 부들부들 떨면서 걸었다. 과연 내일도 걸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휴식 후에도 나처럼 몸이 아파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처럼 티켓을 사서 먹는 사람들은 지정된 레스토랑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숙소안에 레스토랑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긴 옷을 하나만 가져갔던 나는, 세탁기에 있는 긴 옷을 떠올리며 덜덜 떨면서 레스토랑까지 가야했다.
다음 날 아침.
내 바로 옆 침대에서 자던, 이탈리아 아줌마 엘레나가 돈과 여권이 든 가방을 도난당했다.
엘레나는 나보다 일찍 일어나 먼저 출발했다가, 내가 길을 나서려할 때 다시 돌아와있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작정하고 누군가가 침대를 털었다는 것이었다.
그녀 주위의 3명이 지갑을 도난당했다고 한다.
바로 옆에서 자던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엘레나는 내가 아주 행운이라며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계속 마주쳐야 할 일행 중에서 누군가가 작정하고 물건을 가져갔다는 것은 아주 불미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모두 엘레나에게 포옹을 해주고, 그녀의 무사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