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프랑스 유학을 결심하다.
한창 일던 커피 붐이 꺼지면서, 대다수의 카페가 일주일에 한 집 꼴로 망해나가던 때였다.
손님이 점점 줄어 일거리도 사라지면서 몸이 편해지는가 싶더니,
결국, 7년 일한 가게로부터 영원히 편해지게 되었다.
한마디로, 잘. 렸. 다.
위기는 기회라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당시 이미 서른 중반이었고,
조금이나마 주식해서 모아둔 돈으로 겁도 없이 고가의 아코디언을 질러버려 나의 통장은 몹시 가벼워져 있었다.
인생에서 더는 물러날 곳이 없을 것 같던 시점이었다.
이쯤에서 나의 두 번째 아코디언과 인연이 닿은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차츰, 연습량이 늘어나면서 별생각 없이 샀던 첫 번째 아코디언의 바람통이 마음에 들지 않기 시작했다.
악기 자체가 작다 보니 바람통을 자주 여닫아줘야 했고 그로 인해 소리를 매끄럽게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장비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난 다시 한번 나의 영원한 조력자 유튜브의 힘을 빌려, 전 세계 모든 아코디어니스트들의 아코디언 소리를 전부 들을 작정으로 내가 원하는 소리를 내는 최고의 아코디언을 찾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내 마음을 사로잡은 아코디어니스트는 브라질 최고의 아코디어니스트 도밍기뉴였는데, 이 분의 음악 내공은 생각 못하고 그저 이 아코디언 같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소리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 후 단칼에 결정해 버리고 말았다.
그때부터 꿈에서도 이 녀석을 볼 정도로 눈앞에 아른거리고 아직, 직접 소리조차 들어보지 못한 녀석과 난 이미 사랑에 빠져있었다.
겨우 검색 끝에 이 브랜드를 파는 미국의 한 가게 사이트를 알아냈지만, 그때만 해도 영알 못이라 직접 거기 사장과 컨택을 할 생각은 절대 할 수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녀석은 생각보다 무척 비쌌고 국내 수입처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나, 이미 눈이 뒤집힌 나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수입 기타를 전문으로 하는 낙원 상가 사장님에게 사정 이야기했고, 사장님의 도움으로 악기를 구하게 되었다.
어찌나 고마웠던지 나중에 그 사장님께 짜장면 한 그릇에 군만두까지 대접해드렸다.
락커 같은 산발 머리로 귀하게 자랐다며 냅킨을 셔츠에 꽂고 단아하게 드시던, 임팩트 있는 분이었는데.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사실, 막상 그 큰 금액을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송금하려니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래서 잠깐 동안이나마, 일을 잘 성사시켰다고 기뻐하던 기타 가게 사장님을 원망할 뻔했다.
일을 잘 못 성사시켰으면 그냥 그 핑계로 안 샀어도 됐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여하튼 지금 생각해보면 딱 사기 맞기 좋을 각이었는데 이 녀석과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하늘이 도운 게 틀림없는 것 같다.
판매처 미국 사이트에 대한 신빙성도 없는 데다가, 아코디언은 보통 소리를 듣고, 악기 자체에 불량이나 하자가 없는지, 실제 듣는 소리가 내가 원하는 소리가 맞는지에 대한 것들을 체크한 후 직거래로 샀어야 하는 건데 역시 무식하고 용감했던 나는 앞뒤 생각 없이 저질러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마음속 천사와 악마가 별 큰 싸움도 하지 않고, 질러버리게 되었고, (고민은 배송 시간을 늦출 뿐)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뒷목을 잡으셨다. 결국 나는 엄마의 등짝 스매싱 + 잔소리 한 바가지를 두고두고 배불리 먹게 된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아코디언은 미련 없이 팔아버리고, 마침내 배 타고 무사히 내 두 번째 아코디언이 도착했을 때 내가 얼마나 기뻤을지는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다.
하늘이 도운 게 틀림없을 정도로 악기의 상태며 소리까지 완벽하게 좋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나는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