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중국으로의 현실 도피 무릉도원 여행
가게를 그만두고, 개인적인 시간은 많았으나 마음의 여유는 정말이지 1도 없었다.
나 같은 쫄보가 해외 유학을 결심한 것만도 대단한 일이었지만, 유학은 현실이었다.
하는 일도 없는데 괜히 마음이 바빴다. 과연 잘한 일일까, 몇 번이나 머리를 뜯으며.
생각은 짧게, 실행은 빠르게를, 실천은 했지만 그 이후 다시 생각이 길어지고 있었다.
가게를 그만둔 때는 5월이었고 프랑스의 학교는 대부분 9월에 개강을 한다.
부모님은 일 때문에 몇 년 전부터 중국에서 거주하고 계셨는데, 7년간 고생했다며 중국으로 동생 내외와 나를 초대해 주셨다.
그때만 해도 비행 경험이라곤 제주도가 전부였던 나에게, 그것은 몹시 설레는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 생각도 안 하고 그냥, 조금은 나를 위한 휴가도 주고 싶었고.
그러다 보면 정리되지 않을까, 내 마음도.
그 때 내가 읽던 책 바가바드 기타에서 행위하는 것은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을 것이고 나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는 , 뭐 그런 구절을 본 것 같은데 여하튼 저 튼 당시 내 상황과 찰떡이었다.
책 한 구절 한 구절에 의지할 정도로 당시의 나는 많이 떨고 있었다.
내가 느낀 중국의 첫 느낌은, 여유롭다였다.
촌 지역이라 그런지, 사람들 얼굴에 순수하고 여유로운 웃음이 보였다. 단체로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모습이라던가, 붉은 등과 폭죽들, 스스럼없이 웃통을 까고 있거나, 입지도 벗지도 않은 반쯤 러닝셔츠를 걸친 아저씨들의 모습들이, 드디어 중국에 왔단 걸 실감 나게 했다.
예상치 못한 복병은 중국의 음식이었다.
비위가 약한 나에게 중국의 비위생적인 음식 관리를 목격하는 것은 곤욕스러웠다. 그리고 특유의 향신료의 향과, 지나치게 짜고 매운 간 등..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볶음밥조차 먹어보면 소금밥이었다.
그렇게 중국에서의 소중한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