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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학 이야기/프랑스 생활 이야기

타들어가는 6월의 툴루즈

시뭄 2019. 6. 28. 02:46

프랑스의 여름은 습하진 않지만 구름 한 점 없을때는 햇빛이 어찌나 공격적으로 뜨거운지 모른다.

생각없이 창 밖에 둔 핑크 키세스가 화상을 입어 처참해져있었다.

서둘러 응급처치를 했지만 미안한 마음이 가득이다.

역시 난 식물 키우는데는 영 재능이 없어.

 

버티고 버티다가 오늘은 빨래를 하러가야지 싶어 주섬주섬 집 앞 동전 빨래방으로 향했다.

너무 더워서 거리엔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우리 집은 시내 한가운데라 이렇게 사람없이 휑한 풍경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처음엔 매번 빨래를 하러 가는게 귀찮았는데 이제는 어느정도 적응이 되었다.

 

지난번에 우연히 단골 빨래방의 명랑한 40대 여주인을 만난적이 있었다.

무인 빨래방이라 대부분 그녀는 자리에 없지만 그 날만은 청소를 하러 온 그녀와 마주치게 되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거는 그녀는, 먼 나라에서 아코디언을 배우러 여기까지 온 내가 신기하다는 듯 나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궁금해했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자,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가 한국 사람이라며, 수줍음 많은 그가 너무너무 귀엽다고 했다.

그리고는 깔깔거리며 웃는 그녀.

자기는 영국에서 왔고 프랑스에서 세탁소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세탁소는 그냥 생계를 위한 거고, 자기는 늘 여기저기 다녀야 병이 안나는 사람이라며, 무인 빨래방이 자기에겐 더할나위 없는 직장이라고 했다.

한번씩 와서 청소를 해주고 나는 놀러가면 돼.

그 말을 듣자, 그녀의 삶이 잠시 부러워졌다.

아니 어쩌면 부러웠던건 그녀 마음의 여유, 소박한 행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난 학교 시험으로 무척 마음이 무거웠었으니까.

떠나기 전 내게 쵸콜릿을 하나 내밀고 자주 오라는 말을 남기고 그녀는 사라졌다.

 

오늘 오후에는 내 아코디언을 구입하러 보르도에서 누군가가 오기로 되어있다.

프랑스에서 꼭 배워보고 싶었던 버튼 아코디언이었는데..

막상 툴루즈로 학교를 옮기고 음악가로써의 삶을 준비하게 되자, 깨닫게 되었다.

내가 음악을 일찍 시작한게 아닌만큼, 이것저것 여러 가지 악기에 다 쏟을 에너지는 없다는 걸.

피아노 아코디언과 피아노만으로도 평생 다 공부할 수 없을거라는 걸 말이다.

바보같이 꼭 겪어봐야 또 하나 깨닫는 이놈의 고집.

그래서 욕심을 버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도 막상 보내려니 참..마음이 그렇다. 

이탈리아까지 가서 직접 구입한 녀석인데.

나보다 더 많이 연주해줄 좋은 인연 만나는게 이 녀석에게도 더 나은 삶이겠지.

사람이 불행해지는 건 욕심 때문이다. 

욕심만 조금 버려도,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할 수 있는 삶일 것이다.

 

 

가령, 프랑스에 더 머물겠다는 욕심을 버리자 마음이 아주 편해졌다.

왜 프랑스에 집착했을까.

지구에는 엄청나게 많은 나라가 있는데 말이다.

나는 내가 살고 싶은 나라를 직접 조금씩 살아보고 결정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마도 20년 후쯤엔 정착할 수 있을까.

요즘 내 머릿속은 온통 여행으로 가득하다. 

어릴 때는 돈을 모으면, 집을 사거나 자동차를 사기도 바쁘다 생각했다.

왜 사람들이 여행을 가는데 돈을 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알게 되었다.

여행은,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데 더할나위 없는 처방전임을.

그리고 영혼이 성장하는데도 더할나위 없느 방법일 것이다.

난 무신론자였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지금은 유신론자가 되었다.

신이 있다고 믿기보다, 우리 모두는 어떤 하나의 거대한 빛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작은 빛들일 것이라고,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믿게 되었다.

왜 전체로부터 분리가 되어 나왔느냐면, 최대한 많이 경험하고, 배우고, 행복하고, 성장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이번 생에서 나의 미션, 나의 부족한 부분을 성장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시나리오, 그것이 어쩌면 인생일지도 모른다.

마음 근육이 생기면,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이 조금은 가벼워지려나.

음악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여행을 떠나야만 한다. 

프랑스를 아주 떠나기 전, 최대한 많이 프랑스를 이 두발로 밟아보고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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