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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프랑스 (21)
시뭄의 아코디언 세계 여행

긴장으로 인해 첫 콩쿨을 엉망으로 치룬 이후, 콩쿨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버렸다. 그래도 연습만이 살 길이라 생각하고 정말 연습에만 메달렸다. 기계처럼 몸이 외우다보면, 없던 자신감도 생기지 않을까. 실제로 무대에서 생기는 공포증의 일부는, 빡센 연습으로 어느 정도 커버가 될 수 있다. 자신이 연습을 철저하게 했다면, 적어도 스스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곡에 대해 내가 얼마나 이해를 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한참을 힘들게 연습한 다음날, 내 연습실에는 "우린 성희를 사랑해, 힘내!"라는 문구가 영어로 적혀있었는데 끝내 누가 적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든든함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최선의 준비를 하고 들어선 콩쿨 장.. 한국에서 온 아코디어니스트는 나뿐이었다..

프랑스에는 장고 라인하르트라는 기타리스트가 만든 집시 재즈라는, 독특한 장르가 있다. 화상으로 손가락을 전부 쓰지 못하게 된 장고는 장애를 딛고 넘어선 정도가 아니라, 그만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기에 이르기까지 한다. 장고는 마누쉬였고 (프랑스어로 집시라는 뜻) 그의 음악은, 그의 뿌리였던 마누쉬, 더 나아가 프랑스를 대표하게 되기에 이른다. 흥겨운 리듬과, 슬랩 스틱 코미디 같은 특유의 개그스러운 느낌이 있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슬픔이 베여있는 장고의 음악은, 마치 인생같다. 우리는 방학을 맞아 파리 투어를 하기로 마음먹었고, 마누쉬 음악에서 아코디언의 역할은 중요하기 때문에 꼭 한 번 파리에서 마누쉬 라이브를 들어야 한다고 합을 모았다. 그리고 결국 검색의 신인 니노가 파리 최고의 마누쉬 라이브 레스..

마르세이유의 둘째날, 우리는 뷰가 좋다는 전망대에 올라가서 천천히 걸었다. 바다를 걷고 걷고 또 걷고. 마르세이유 주변의 시장에는 세계 각국의 향신료들이 가득했다. 지겨울만큼 바다를 보고 우리는 다시,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우리의 학교,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또 한동안은 바다를 볼 수 없을테니 실컷 봐두고 온게 다행이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땐, 그리운 이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얀, 야누,야누쉬키. 그를 부르는 애칭은 다양했다. 난 처음에 얀이 게이인줄 알았는데, 여성스러운 말투와 몸짓 때문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늘 함께 다니는 프랑소와라는 친구와 수상한 관계가 아닌가 의심했을 정도. 나중에 그 이야기를 얀에게 하니 깔깔거리며 뒤로 넘어가게 웃는다. 얀은 상냥하고 다정한 친구였다. 개는 싫어하며, 고양이와 여자아이들을 사랑하는 취향 확고한 친구였다. 언젠가 얀은 내게 오스트리아에서 아코디언 하나만 들고 버스킹을 하던 시절 이야기를 해주었다. 유럽에서는 버스킹으로 돈을 벌 수 없다며, 오스트리아에서 아멜리에의 ost만 연주했을 뿐인데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자랑을 했다. 몇 곡 연주하고는 자리만 옮겨 같은 레파토리로 계속 돈을 벌었는데 그 돈이 꽤나 쏠쏠해서 여행 비용을 하고도 ..

까미노에서 가장 행복하고 희망에 벅찬 발걸음을 내딛는 시간은 아마도 아침이 아닐까. 아침의 공기는 상쾌하고, 태양은 그렇게 강렬하지 않으며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오기 시작한다. 오늘 하루, 까미노를 기분좋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좋은 예감도 든다. 이 생각이 점점 꺾이기 시작하는 것은 태양이 강렬해지고, 바람은 식어버리는 오후쯤이 되면서부터. 어제의 동행길이 서로 즐거웠던 나와 쉐아는, 서로 함께 걷자는 약속은 없었지만, 아무 말없이 서로가 서로를 기다려주는 것으로부터 동행이 시작되었다. 뭐랄까..직접적으로 같이 걷자고 말하고 계획을 잡고 걷는편보다, 뭔가 더 자연스럽고 편안했고.. 설레는 기분도 들었다. 말없이, 이 친구도 나와 함께 걷고 싶어하는구나..하는 맘을 느꼈을 때의 설레임은, 만질 ..

팜플로나에 도착하기부터 다들, 팜플로나에 도착하면 타파스를 먹어야 한다고 난리였다. 그리고 팜플로나까지 걷게 될 길들이 아름다워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 내게 이야기해서 나름 기대를 했다. 팜플로나는 나바르 지역의 수도로, 꽤 큰 도시였고 첫 느낌은 고풍스럽지만 색채가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건물들이 오래되었지만, 다양한 색들로 칠해져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보라색 건물, 연보라색 건물들도 많았으니.. 팜플로나까지 가는 경로는 첫 날 헬 난이도였던 피레네에 비하면 하찮은 수준이었다. 길의 대부분이 마을들을 통해가는거라, 스페인의 마을과 도시,도로등을 보며 걷는 재미 또한 있었다. 자연과는 좀 멀어진 느낌이긴 했지만, 오르막이나 내리막도 별로 없는 평지 위주의 길을 걷는 행복이란. 스페인 ..

학교 근처의 몽도르로 친구들과 산책겸 산행을 갔다. 프랑스 남부 시골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냥 카메라만 들고 아무대나 찍어도 윈도우 바탕화면 급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도 꽤 많았다. 함께 갔던 친구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50대 쟝 미쉘과 학교에서 주방장 일을 하고 있는 오딜, 프리 마돈나 아코디어니스트인 니콜이었다. 이 세 친구가 스포츠 마니아였던걸 몰랐던 나는, 가벼운 산책인 줄로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 그 날 25km를 걷고 고관절이 탈골 되는 줄 알았다. 게다가 발걸음은 어찌나 빠르던지. 쟝 미쉘은 나중에 나에게 몹시 미안해하며, 마지막 하나 남은 작은 쵸콜렛 바 하나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오베르뉴 지역의 산들은, 평지처럼 완만하게 뻗어나가고, 나무가 있는 부..

보통 우리 학교에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은 학교 내의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는데 니노는 기숙사 생활에 불평이 많았다. cnima의 방학은 1년에 2주씩 4번이나 있었고, 방학때마다 학교에서 하는 특별 수업을 듣지 않으면 그때마다 방을 비워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니노는 생소브에서 지낼 집을 마련했다. 집값은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이 곳 프랑스에서는 CAF라는 주택보조금이 국가에서 지원되기 때문에 이런 작은 시골 마을의 방 한칸은 한달에 10만원이면 구할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오베르뉴 지역의 겨울이 꽤 춥기 때문에 난방비가 든다는 사실이었는데 이번달만 20만원의 보일러값이 나왔다고 니노는 투덜댔다. 급해서 이 집을 구하긴 했지만, 곧 전기 보일러가 아닌 방으로 다시 알아봐야겠다고 했다. 니노는 스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