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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프랑스길 - 스페인 팜플로나에 도착하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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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프랑스길 - 스페인 팜플로나에 도착하다.

시뭄 2019. 8. 19. 17:57

팜플로나에 도착하기부터 다들, 팜플로나에 도착하면 타파스를 먹어야 한다고 난리였다.

그리고 팜플로나까지 걷게 될 길들이 아름다워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 내게 이야기해서 나름 기대를 했다.

팜플로나는 나바르 지역의 수도로, 꽤 큰 도시였고 첫 느낌은 고풍스럽지만 색채가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건물들이 오래되었지만, 다양한 색들로 칠해져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보라색 건물, 연보라색 건물들도 많았으니..

 

팜플로나까지 가는 경로는 첫 날 헬 난이도였던 피레네에 비하면 하찮은 수준이었다.

길의 대부분이 마을들을 통해가는거라, 스페인의 마을과 도시,도로등을 보며 걷는 재미 또한 있었다.

자연과는 좀 멀어진 느낌이긴 했지만, 오르막이나 내리막도 별로 없는 평지 위주의 길을 걷는 행복이란.

 

스페인 시내를 걷고 있으려니, 딱 봐도 순례자 차림인 나를 보고 거리의 사람들이 인사를 건넨다.

'부엔 까미노!' 언제 들어도 힘이 나는 말.

특히나,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분들이 격려의 말씀을 많이 주셨다.

좀만 더가면 팜플로나라고. 그 말을 듣고 한참을 더 걷고서야 팜플로나에 도착한 건 슬픈 일이었지만,

그 말은 나에게 마지막 젖먹던 힘을 쥐어짜내게 해주었다.

길은 쉬웠지만, 몸 상태가 첫 날만큼 좋지않았기에 언제쯤 팜플로나에 도착할 지 걷고 걷고 또 걷는 기분이었다.

조금씩 커지는 발의 물집과도 싸워야했으니 말이다.

팜플로나는 영원히 오지않는 오아시스 같은건가라고 생각할 즈음, 아름다운 도시 팜플로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의 기쁨이란!

 

팜플로나 전경

아름다운 색들의 아파트. 살고 싶었다,진심.

도시 곳곳에 있는 오래된 유적지들.

대학생이 된듯, 캠퍼스에서 휴식을 취하는 부랑자의 발.

마음 같아선 팜플로나 구경도 하고, 이 마을에서 자고 가고 싶었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그렇듯.

하지만, 나의 동행이었던 로레나 할머니는 단호하게,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조용한 마을이 나온다며 내 발걸음을 재촉했다.

팜플로나에는 많은 순례자들이 있기 때문에, 숙소의 청결 상태도 의심이 되며, 이 곳에 머물다보면 까미노는 걷고 싶지않고 머물러 쉬고싶은 마음만 들것이라고 그녀는 내게 말했다.

여기서 로레나의 성격을 알 수 있었는데, 로레나는 가지고 짐(그녀 몸만한 정도)의 무게만해도 욕심도 많고 늘 파이팅 넘치는 할머니였던 것이었다. 

나는 마지못해, 죽어가는 몸을 이끌고 로레나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다음 마을에 도착했을 때에야 로레나의 말을 따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곳에서 만난 알베르게는 너무나 조용하고 좋았으며, 마을 자체도 팜플로나의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와는 달랐다.

 

조용하고 아름다웠던 마을

보라색 들꽃이 청초하다.

 

이 마을은 내가 까미노 순례중 두번째로 좋아하는 마을이 되었다.

가족이 생긴다면 같이 살고 싶은, 그런 마을이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느낌의 마을.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한 마을 사람들의 성격이 좋았다.

내가 길을 걸을 때, 한무리의 길막 할아버지들이 있었는데, 기분좋게 한잔씩 하시고 수다 삼매경이셨다.

내가 살짝 비켜가려하자, 옆에 있던 할아버지 한 분이 순례자 가는데 길막하지 말고 나오라는 듯이 동료 할아버지에게 고함을 빽 지르셨다. 그 이후 다들 부엔 까미노를 외치며, 모자까지 흔들어 주심.

 

발의 상태가 너무 좋지않아, 약을 살 마음으로 들어간 동네 약국에는 조금 츤데레이긴 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약사 아줌마도 있었다.

내 발을 보더니, 약을 파시는게 아니라 양호 선생님처럼 여기저기 손수 약을 발라 치료를 해 주시는게 아닌가.

그러면서 스페인어를 가르쳐 주기도 하시고...

발에 임시로 붙이고 걸을 밴드만 사고 가려다, 밴드를 붙이고 걸으면 상처가 더 덧난다며 불호령만 들었다.

깨갱하고 하시는데로 가만 발을 맡겼다.

마지막 케어로 불타는 스페인 태양에 탄 내 어깨와 목 부분에 수분 스프레이까지 뿌려주심.

 

게다가 숙소에서는 나처럼 혼자 까미노에 온 한국 여자분을 만났다.

마침 나와 나이 또래도 비슷해서, 간만에 한국말로 수다 떠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를 지경이었다.

오늘도 이렇게 새로운 사람들, 풍경과 마주하고 뿌듯한 까미노를 보낸 느낌.

점점 까미노가 좋아지고 있었다.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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