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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프랑스길 느긋느긋 꼴찌로 걷기.

시뭄 2019. 8. 12. 02:44

평소 운동도 안하던 저질 체력.

몸이 도대체 너 왜 이러냐며 여기저기서 연신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그럼에도 신기했던건, 걷기 전이 제일 고통 스러웠고 막상 걷기 시작하니 그런데로 또 몸이 고통을 잊은 채 움직여주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마치, 오래 된 고물 자동차처럼. 시동 걸기까지 삐걱삐걱 거릴뿐 막상 시동이 걸리고나니 상쾌한 기분까지 들었다.

 

오늘은 꼴찌를 면해보고자, 나름 최선을 다해 걸었다.

어제 숙소에서 만난 이탈리아에서 온 로레나라는 56세의 할머니 친구를 만났다.

프랑스에 있을 때도 그렇고, 유독 나는 할머니 친구를 좋아한다.

특히, 로레나같이 나이만 할머니 나이이고 마음은 여전히 해맑아 소녀같은 그런 친구 말이다.

 

로레나는 나이가 무색하게, 나보다 훨씬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나의 페이스를 따라주며 발걸음을 맞춰주었다.

그녀의 영어는 첫 날 더듬더듬에서 오늘은 나와 대화하며 걷는 동안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그녀는 나에게 다 큰 밤비노(아기)라며, 어르고 달래면서 우리 둘은 나란히 꼴찌로 둘째날 숙소였던 상 니콜라에 도착했다.

 

도착 시간은 오후 6시쯤.

주인 아저씨가 너무나 친절하셨고, 숙소또한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숙소에 도착하자, 아침에 함께 출발한 낯익은 얼굴들이 이미 도착해 술 한잔씩을 하고 있다가 우리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계란을 삶아 슈퍼에서 산 햄과 과일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있는데, 주인 아저씨가 숙소 레스토랑에서 저녁 메뉴로 나온 돈까스가 남았다며, 우리의 단촐한 식탁을 풍성히 채워주셨다.

어찌나 감동이었는지...감사의 인사를 드리자, 정색하며 쑥스러워하시는 츤데레 숙소 아저씨 쵝오!

 

이 곳에서 1유로를 주고 1회용 침대 시트를 깔았다.

사실 숙소 전체가 너무 깔끔해서 그럴 필요도 없어보였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첫날 숙소와는 달리, 이 곳에는 담요가 제공되어서 훨씬 따뜻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어제보다는 조금 덜 고된 듯 느껴졌다.

이제 점점 몸이 적응을 하는 것일까.

 

산티아고에 혼자 오면 이렇게 친구를 많이 만들 수 있을지 미쳐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함께 출발지에서 출발한 이들이 대부분 비슷한 마을에서 묵고, 비슷한 시간에 도착하기 때문에 보는 얼굴을 자꾸 또 보게 되는 것이다.

다시 보게 되면 그 반가움이란...

길 위를 걷는 사람들은 제각각의 직업,삶을 가지고 있고 나이도, 국적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었다.

산티아고를 걷는 이유 모두 제각각이었다.

 

내가 산티아고를 찾아온 이유에 대한 대답을, 이 여정이 끝나는 날 찾을 수 있을까.

내게는 오늘도 의도치않게 동행이 있어, 나의 리듬대로 걸을 수만은 없었다.

그 덕분에, 나는 약간 무리를 하게되어 발이 많이 아프게 되었다.

내일은 로레나에게 이야기해서 천천히 가야겠다고, 이야기해야겠다.

표지판이 보일 때마다 몇 키로가 남았을까 설레이는 가슴.

 

누군가의 집은 누군가의 로망.

 

홀로 산티아고를 떠난 순례자의 짐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 로레나의 뒷모습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

 

푸근했던 슈퍼 아저씨. 한국어가 일품이셨다.

 

스탬프를 찍으러 교회로 고고곡

 

하나씩 늘어나는 스탬프

 

산티아고 길위에 집을 짓는다면 이 정도 대문쯤은 만들어주는 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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