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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학 이야기

15. 10살 많은 내 친구 콜레뜨

시뭄 2019. 7. 17. 21:10

프랑스에서는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나이에 따라 존대어를 하는것이 아니라, 상대와의 친밀함에 따라 존대어를 쓰거나 말을 놓거나 한다.

콜레뜨는 상냥한 친구였다. 이제 막 프랑스에 도착해, 프랑스어라곤 하나도 할 줄 모르는 나에게 더듬더듬 영어로 프랑스어를 가르쳐 주곤했다. 콜레뜨가 어찌나 열성적으로 나에게 새로운 프랑스 단어들을 가르쳐 주는지 나는 그녀의 그런 애정어린 행동이 처음엔 의아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많고 눈물도 많고 사람들을 돕기 좋아하는 콜레뜨가 이해가 되지만 그땐 콜레뜨에 대해 잘 모르던 상태였고, 나를 몹시도 챙겨주던 그녀의 호의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의심많은 성격이라 그런지 왜 나를 도와주는거지? 하는 마음이 더 컸었다.  콜레뜨가 가르쳐 준 프랑스어 단어들이 하루치를 초과할 땐 꽤나 스트레스도 받았고 말이다. 그러나 그녀 덕분에 처음엔 외계어같던 프랑스어가 어느 순간 귀에 들리고 있었다.

 

콜레뜨의 하루의 즐거움은 식후 하나씩 먹는 쵸콜렛 하나였다.

건강상의 문제로 그녀는 그렇게도 좋아하는 쵸콜렛을 식후 딱 하나만 스스로에게 허락하고 있었는데 쵸콜렛을 먹을때마다 "음~"하고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는것이 재미있었다.

콜레뜨를 기쁘게 하는 방법을 나는 알고 있었다. 쵸콜렛 선물을 하기만 하면 그녀는 내 두 뺨에 키스를 하고 꼬옥 안아주고 기뻐 어쩔 줄 모르는 비명을 질렀기 때문이다.

콜레뜨는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아카펠라 그룹에서 노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코디언 수업을 받던 도중 어깨의 통증으로 인해 학업을 그만두어야했고 병원에서 더이상 아코디언을 연주하지 말라는 통보를 듣고는 눈이 새빨게지도록 울었다. 그녀가 얼마나 아코디언을 사랑하는지 나는 알고 있었기에, 그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갔다.  그 날 나는 콜레뜨에게 슈퍼에서 산 작은 쵸콜렛을 내밀었지만, 여느때와 다르게 그녀는 슬픈 표정으로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가엾은 콜레뜨.

 

콜레뜨는 50대가 다 되어가는 나이였지만, 여전히 결혼을 하지않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때인가, 산책하던 도중 그녀의 남자 친구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남자 친구는 유부남이었다.

그 관계를 무려 8년째 이어오고 있다고 했는데, 그녀의 눈에 수심이 가득했다. 행복할 리 없는 사랑이었다.

둘 중 한 명이 견디고 있는 관계였으니까.

그러나 그녀의 친구들과 가족,주변사람들 모두 그 남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그들은 마치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고 했다.

콜레뜨도 내게 그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나 주저함이 없었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관계에 대해 사람들이 비난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냐고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일테니까.

콜레뜨는, 물론 옳은 일은 아니지만 여기 사람들은 어느정도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이해한다고 나에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8년이나 그런 관계를 이어온 것은 콜레뜨가 정이 많고 우유부단한 면이 있기 때문인것도 같았다.

그녀를 그렇게 8년이나 내버려 둔 그녀의 남자 친구가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진지하게 그녀에게 어서 그 관계를 끝내라고 이야기했고 콜레뜨는 자기도 그럴 생각이라고 했지만, 그럴수 없을것 같아보였다.

 

학교는 크리스마스면 완전히 닫고, 기숙사방도 비워줘야하는데 콜레뜨는 그런 나를 걱정하며,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자고 제안했다. 그녀의 고향에서, 그녀의 가족들과.

승낙하지않을 이유가 없었다. 안그랬다면 마을에서 2주간 지낼 방을 구하느라 바빠졌을 일이었다.

우리는 콜레뜨의 작은 오랜지색 차를 타고 3-4시간정도 계속 달려나갔다.

그녀의 고향은 거대한 돌 산들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시골 마을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남자 친구와, 베스트 프렌드인 통통을 소개해준다며 들떠있었다.

콜레뜨의 집은, 혼자 사는 아가씨의 집답게 깔끔했고 악기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함도 묻어있었다.

 

콜레뜨의 집

마을 전경. 산이 참 아름답다.
주황색 머리띠를 한 사람이 내 친구 콜레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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