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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학 이야기

16. 프랑스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시뭄 2019. 7. 19. 03:23

우리나라에서 크리스마스는 보통 연인들을 위한 날이란 개념이 더 강하지만, 프랑스에서의 크리스마스는 가족들과의 시간을 의미한다. 가족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선물을 나누는 것. 

그것이 크리스마스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나는 콜레뜨의 오빠 세르쥬와 콜레뜨의 부모님을 만났고, 조카들도 만났다.

세르쥬는 그림을 그리는 흑인인 쟈네뜨와 아프리카 여행 중 만나 결혼을 했다고 한다.

쟈네뜨의 그림은 아프리카의 강렬한 색으로 가득했다.

 

콜레뜨에게는 언니가 있었는데, 그 언니는 한국으로부터 입양한 언니라고 했다. 

지금 프랑스에 있지않아 오지 못했지만, 그런 사실 때문에 가족 모두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었고, 나를 진심으로 반겨주었다. 부모님 집에는 다문화 가족에 관한 책과 한국의 역사에 관한 책들이 서재에 꽂혀있었고, 그들이 그들의 딸을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사랑으로 느껴져 마음이 따뜻해졌다.

 

콜레뜨의 부모님은 당나귀를 너무 좋아해서, 당나귀와 관련된 작은 물건이나 그림들을 집안 곳곳에 가득 채워두었다. 

당나귀의 순한 눈과 천진한 얼굴을 사랑하는 선한 사람들이었다.

콜레뜨가 미리 나에게 귀띔을 해주었기 때문에, 작은 당나귀 조각을 선물로 준비한 나에게 그들이 비쥬를 퍼부은것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콜레뜨의 조카들은 눈도 머리카락 색도 다른 나를 신기하게 여겼다.

하지만, 12살 난 여자 아이들은 이미 조숙해서 나와 친구가 되어 우린 제법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장식을 하고, 함께 음식 준비를 하는 동안 자정이 되어있었다.

밤 12시가 되어서야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는데, 이것이 프랑스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한다.

저녁 식사 전에는 간단한 스낵과 소시송(고기를 말린 소시지)과 술로 아페리티프를 가지며 이야기를 나눈다.

 

콜레뜨의 아버지는 클래식 LP 수집에 미쳐있었는데, 따로 방을 만들어 자신의 아지트를 만들어 놓을 정도였다.

우리는 같이 클래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몰래 나를 불러 자신의 아지트로 데려가려하자, 콜레뜨는 자기에게도 안보여주는 방을 보여준다며 아버지를 놀렸다.

작은 방은 오래된 LP로 꽉 차 있었고, 좋은 오디오가 한켠에 마련되어있었는데 없는 LP가 없을 정도였다.

콜레뜨의 아버지는 나에게 듣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골라보라고 했고, 우리는 한동안 그 방에서 말없이 음악만을 들었다.

 

식탁에는 가족들 외의 빈자리가 하나 있었는데, 쟈네뜨는 매년, 가족들 수보다 하나많은 자리를 마련해 빈 자리로 놓아둔다고 했다. 그 자리는 손님을 위한 자리라고 했다. 작년에는 비어있었지만, 올해는 내가 찾아와 자리의 주인이 생겼으니 마음껏 즐기라는 말이 그렇게 다정할 수 없었다.

 

그 날의 음식은 프랑스인들이 특별한 날 즐겨먹는 라클레뜨라는 치즈를 녹여먹는 요리였다.

라클레뜨 전용 팬에 치즈를 잘라 담아 녹은 치즈를 햄이나 고기,빵 등 준비된 재료에 끼얹어먹는 요리다.

만찬이 끝난 후, 각자 선물을 주고 받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선물은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족끼리 선물을 주고받고하며, 작은 것에 기뻐하고 놀라면서 키스를 주고받는 문화가 어쩐지 참 부러웠다. 이렇게 소소한 일상이 행복이 아닐까.

기대도 않고 있었는데, 꼬마 아이들이 나의 선물도 준비했던 모양이었다.

 

작은 상자에는 꼬불꼬불하게 적은 편지와 직접 꿰어 만든 목걸이, 작은 손가방, 팔찌등이 있었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던 난, 그저 너무 감동해서 꼬옥 아이들을 안아주는 일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살아오는 동안 이렇게 마음 따뜻한 크리스마스가 있었을까.

무뚝뚝한 경상도 가족 사이에서 살아온 나에게는 신선한 문화충격이었지만, 돌아가면 꼭 가족들과 다정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요리를 준비하는 콜레뜨

아페리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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