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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뭄의 아코디언 세계 여행
27. 아코디언 국제 콩쿨 1등 하다. 본문
긴장으로 인해 첫 콩쿨을 엉망으로 치룬 이후, 콩쿨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버렸다.
그래도 연습만이 살 길이라 생각하고 정말 연습에만 메달렸다. 기계처럼 몸이 외우다보면, 없던 자신감도 생기지 않을까.
실제로 무대에서 생기는 공포증의 일부는, 빡센 연습으로 어느 정도 커버가 될 수 있다.
자신이 연습을 철저하게 했다면, 적어도 스스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곡에 대해 내가 얼마나 이해를 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한참을 힘들게 연습한 다음날, 내 연습실에는 "우린 성희를 사랑해, 힘내!"라는 문구가 영어로 적혀있었는데 끝내 누가 적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든든함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최선의 준비를 하고 들어선 콩쿨 장..
한국에서 온 아코디어니스트는 나뿐이었다. 그래서 사회자인 프레데릭 데샹은 나에 대해 이것 저것 묻는 것이 많았다.
안그래도 긴장해서 나는 그저 빨리 하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던 것 같다.
이 날 콩쿨에서 연주한 곡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곡, 클로드 토망의 2 en 1과 피아졸라의 곡을 스니마의 학생이던 사라 보노가 아코디언 용으로 메들리 편곡한 아스토르의 우주였다.
거의 영혼을 내려놓는 심정으로 연주하고, 연주가 끝났을 땐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렸다.
나는 정말로...내가 어떤 연주를 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중간에 악보를 잊어버리거나 멈추는 실수가 없었던 것에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연주를 마치고 내려왔을 때, 또 다같이 식사를 하는 시간마다 사람들이 연주가 정말 좋았다는 말들로 어느 정도, 그래도 괜찮은 연주였나보다..라고 생각하며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던것 같다.
그런데 심사 전에 나를 마주친 어떤 심사 위원 분 한 분이, 너무 연주가 좋았다고 해주셔서 또 너무 감사했다.
심사때도 사실 기대는 전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같이 심사를 기다리던, 나와 같이 연주한 쥴리앙이 내 곁에서 내게 속삭여주었다.
"네가 1등이야, 성희"
난 그때도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진짜로 1등에 내 이름과 한국이 불리는게 아닌가.
그 때 온 몸이 정말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리는게 느껴졌고, 상 받으러 걸으러 가는것도 너무 떨려서 부들부들 거리면서 갔을 정도였다. 연주하러 무대에 오르기 전보다 더 떨렸던 것 같다.
알고보니까 나 빼고는 모두 알고 있었다. 내가 1등이었다는 걸..그래서 다들 나를 그렇게 웃으며 쳐다보았던 거였구나.
한국에서는 아코디언이라는 악기가 유명하지 않지만...그래서 아무도 관심 없을 상이지만, 뭔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프랑스에서..내가 한국인으로써, 우리 나라 이름을 걸고 콩쿨에서 1등을 탔다는것이.
처음으로 스스로가 너무 자랑스럽고 대견했던 것 같다.
나는 혼자서는 무대가 여전히 떨리는 초보 연주자였기 때문이다.
응원해준 친구들, 선생님들, 부모님들 모두에게 너무너무 감사한 날이었다.
이 후, 학교에서 몇 번이나 콩쿨을 나갈 기회가 있었고 몇 번인가 더 1등도 하고 수상도 했다.
이러한 과정들도 어쩌면 배움이고 경험이었겠지만, 이제는 더이상 콩쿨에 미련이 없다.
음악은 harmony이지 competition이 아니란 것을 마음으로 깨닳았기 때문이었다.
보면대가 없는 조니를 위해 인간 보면대가 되어주는 학교 친구들의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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